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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를 살까 말까

 

 

 

몇년이나 썼는지 기억이 안나는 듀오백 의자는 나하고는 그리 맞지 않는 의자였는지 오래 앉아있을수록 허리가 아팠더랬다. 그래도, 적어도 20년 이상은 됐을법한 책상에 가끔이라도 앉아 무언가를 하려면 그 불편한 의자도 나름 쓸모가 있었기에 불편함을 참고 계속 의자를 썼었더랬다.

 

그렇게 참고 참다가 인생이 무상하기만 하던 어느 날 과감히 버려버렸다. 

 

그 시절의 나는 인생을 하루 하루 가까스로 살아내는 중이었고, 두 번 다시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계획하는 일은 없을꺼라 다짐할만큼 마음이 피폐한 상태였다. 때문에 좁디 좁은 방구석, 듀오백 의자 자리만큼이라도 넓히면 내 마음의 여유도 그만큼 늘어날까 싶어 그 의자를 버려버리고 아주 싼 값에 어울리는 딱딱한 접이식 의자를 구매했다.

 

좋은 계획도 마음 먹은대로 안되는 것처럼, 좋지 않은 계획도 마음 먹은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런 상처 어린 다짐들이 무색하게도 나는 어느 날 다시 책상에 앉게 되었고, 자의 반, 타의 반 수많은 컴퓨터 작업을 위해 그 딱딱한 접이식 의자에 하루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앉아있곤 했었다.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때만 해도 젊었던 나는, 아니 나의 근육들은 그 시간을 충분히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러나 불변하는 법칙. 시간은 흐르고 마음이 변해가는 것처럼, 내 몸도 변해간다는 것.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그렇게 학대 아닌 학대를 당하던 내 몸은 결국 나이에 맞지 않는 오십견이라는 선물을 받게 되었다. 1년을 넘게 고생했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아픔이지만 이제서야 그게 선물인 것을 알았다. 멈춤의 표시. 더이상 몸을 학대하지 말고, 스스로의 건강을 돌아보라는 내 몸의 솔직한 표현.

 

사실 마음의 상처만이 온전한 이유는 아니었다. 생각보다 높은 가격, 그리고 편하고 좋은 의자를 들여놓기에는 너무 좁은 방,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재개발로 인해 몇 년 후면 가게 될 예정된 이사. 그 모든 것들이 이유였다. 물론 이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돈이었을지도?

 

 

직장을 다시 구했고 규칙적인 생활과 따박따박 받는 월급으로 인해 마음이 많이 아물어가면서, 어느 정도의 고생은 내 인생을 철없이 소비한 댓가라, 그 벌이라 생각했던 마음까지도 조금은 아물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잘 살고 싶어졌다. 이제 아무리 길어봐야 10년에서 20년 사이로 남았을 엄마의 인생도 여한 없이 누리게 해 주고 싶었다. 수없이 많았던 날들을 왜 그렇게 철없이 흘려보내고 소비했나 후회가 되었고 이제라도 무언가 액션을 취하고 나도 조금은 변화된 삶, 재정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고 싶어졌다. 그래서 장장 10년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었던 블로그와 유투브에 다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책상에 다시 앉았다. 근데 진짜 몸이 예전같지가 않더라. 어깨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그렇게 통증을 느끼는 몸은 하루의 잠으로 해결되지가 않았다. 결국 의자를 살까 말까 다시 고민을 하게 되는 악순환에 또 빠져들었다. 악순환에 빠진 가장 큰 문제는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이사인데..

 

올해 안에는 이사를 가게 될 확률이 70% 이상이므로 1년을 그냥 버텨볼까 싶은거다. 그러다가도 그 얼마 안되는 돈 때문에 내 몸을 그렇게 혹사한다는 것이 계산상 맞는 것일까 생각이 들어 사야지 하다가, 아니 싸구려 의자를 사다가 버리는 것은 돈이 아깝게 느껴지다가, 외식 한 번 정도 되는 값의 의자라면 충분히 몇 개월의 값어치를 하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그렇게 또 다시 의자를 살까 말까 2주째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사실 돈이다. 자금 여유가 있었더라면 앞뒤 생각하지 않고 쓰다 버리지 하며 샀을텐데, 그 몇 만원의 돈도 아깝고 아쉽기에 자꾸 고민하게 되는 것.

 

사실 파이프라인 구축을 위해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투자되어야 할 돈인데, 10개에 2만원짜리 레드향은 잘도 사먹으면서 최소 10개월 정도는 쓰게 될 9만원 남짓 하는 의자는 그렇게나 아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투자는 선행되어야 한다. 꾸준하고 오래 진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래야 한다. 그런데 나는 왜 자꾸 선후를 구별하지 못하고 현실에 눈이 가리워질까.

 

오늘도 의자를 사기 위해 한참을 돌아보다가 결국 다시 포기하고 말았다. 버는 돈은 정해져있고 쓸 돈은 자꾸만 늘어난다. 매달 그 돈을 갚아내느라 이리 저리 머리 굴려가며 마음 고생을 하느라 9만원은 아끼고 몇 달 정도 몸으로 떼워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어제 했고, 지금 하고, 내일 해도 바보 같은 생각에 자꾸만 행동이 제지되고 있다. 

 

그 놈의 가성비가 무엇인지. 없는 돈에 싼 값에 좋은 의자를 사려니 발품을 많이 팔게 되고, 그러자니 자꾸 마음이 흔들리는 탓도 있다. 그 값에 좋지 않은 후기는 너무도 당연한건데 그것들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아니야. 잘 골라서 10만원 미만하는 의자를 빨리 사야겠다.

3개월 할부로 사지 뭐. 적어도 10개월 혹사되어야 할 내 몸의 가치가 그것보단 더하지 않겠는가.

 

2주는 넘게 고민했던 일인데 글을 쓰니 한결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정리되는 것 같다.

어렸을 적부터 수없이 썼던 글,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놓아버렸던 글이었는데..

타고 난 성향은 글로 마음을 풀어내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나에게 잘 맞는 방법인 것 같다.

 

 

고민하지 않아야 할 일들을 고민하며 시간을 바보같이 보내다가,

정작 고민해야 할 일들은 시간에 쫓겨 포기되어지거나, 급하게 이루어지곤 한다. 이런 분별 없는 시간 사용은 고쳐야 하는 일인데...

내가 다시 삶에 애착을 갖고 잘 가꿔나가려고 노력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삶. 애착을 가져도 되는 것이겠지? 

애착을 갖는 순간 빼앗길 것 같고,

무언가 좋지 않은 일들이 생겨날 것 같고,

그것은 네 몫이 아니라고 확인받게 될까봐 조금은 두렵지만...

그래서 수없이 무심하게 지내려 했지만... 

 

좀 더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이제 마음 속에 가득하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일이 되는 방향으로,

감정대로 선택하지 않고 건강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함으로

이제 내 삶에도 열매를 쟁취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아니, 살아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