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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천원이 아깝다

엄마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신경써드려야 할 것이 많아지고,

그 중 하나는 이런 것들이다.

 

엄마 오늘 점심은 뭐 먹었어?”

 

여지없이 돌아오는 대답은 

, 그냥 김이랑 김치에다가 먹었지

비빔면 먹었어

쌀국수

 

 

먹는 힘이라는 것, 정말 딱 먹는만큼 힘이 생기는 것.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그 말이 딱 들어맞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직장을 다니는 나로써는 퇴근한 이후 엄마의 저녁을 챙기는 것조차 힘에 겹다.

만약 내가 챙겨야 할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내 자녀였다면,

내가 직장을 다니던, 몸이 아프던, 힘이 들건간에 그래도 반드시 식사를 챙기지 않았을까 늘상 생각하지만

이상하게 나이든 엄마한테는 그만큼의 애씀이 따라붙지 않는다.

 

아직은 엄마가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 그나마라도 움직여야 차라리 건강이 낫다는 이상한 논리, 

그리고 여전히 난 몸이 피곤하고, 직장을 다녀온 후에는 좀 더 쉬거나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내 욕구에 맞물려

엄마의 노년은 여전히 스스로의 끼니는 스스로가 챙기고, 더 나아가 직장 다녀온 자식의 끼니까지 챙겨야 하는 조금은 고단한 노년이다.

 

그러한 탓에 내가 집에 일찍 들어가는 날은 종종 외식하기를 선택하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엄마의 요청과 맞물려 자주 배달음식을 시켜먹곤 한다.

 

물론 이 배달음식에도 한계가 있어서 아무 거나 자주 시켜먹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쯤은 엄마 입맛에 맞는 것으로 엄마의 몸보신을 그렇게 해드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늘 마음과 다른 현실들, 내 능력부족으로 인한 경제적 한계 탓에

엄마가 먹을 것에서조차 자꾸 가격을 따지고, 규모를 따지게 된다는 것.

 

 

배달시켜 먹은 콩불, 언제나 남이 해 준 음식은 맛있다.

 

 

콩불을 먹기로 한 날. 

엄마는 그런 것은 콩나물만 가득 들어서 너무 비싸기만 하다고 뭐라 했지만, 그래도 한번은 먹어보고 판단하자며 내가 밀어붙였다.

 

사실 그만한 음식도 없다 싶었다. 

입이 짧고 소화력이 낮은 엄마한테는 그래도 입맛을 돌게 하는 매콤한 맛에, 

콩나물이라는 야채, 단백질을 보충하는 고기의 조합이 더할나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곁들여 2천원이면 살 수 있는 계란찜은 말해 무엇할까.

 

그런데도 자꾸 계산이 들어가는 것이다. 

결국 시켜먹으면 15000원은 소비하게 될텐데 이것을 한번씩만 아껴도 한달에 6만원은 아끼게 되고, 

그 돈만으로도 쥐꼬리만한 월급에 대출금까지 갚아야 하는 내 상황에 숨통이 트이기도 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쉽게 쓰여질 6만원이고, 

너무 작다면 작고, 하찮다면 하찮은 돈일지 모르지만, 

현재의 내 삶에서 6만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그래서 자꾸 계산이 되고, 그냥 간단하게 밥 한끼 집에서 먹으면 되는데 15000원을 들여서 먹는 것이 아깝게 느껴진다.

 

 

 

생각이 이렇게 다다른 끝에 이런 내가 참 바보같이 느껴지고 화가 났다.

직장을 다니는 것 외에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경제력으로 인한 삶의 불편을 어떻게든 아낌으로 해결하려고 하다니.

쥐꼬리보다 더한 돈을 모은다 해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따라잡을 수 없는 이런 시대에,

다른 방법들로 지금의 불편함을 해결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그것들에 대해 노력과 노동을 더 투자할 생각을 하지 않고, 

노모의 입으로 들어갈 음식조차도 줄여서 조금씩이라도 해결하려는 내 마음의 이기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사람은 나이가 든다.

누구나 나이가 들어간다.

그렇게 늙어갈수록 타인의 돌봄이 점점 더 필요해진다.

 

내가 가보지 않았고, 내 부모의 삶으로도 도달하지 않았던 지점을 매일 갱신하며 지나칠 때마다

어쩌면 그래서 더 당황스럽고, 더 적응되지 않는 것들이 생기는가보다.

 

하지만 언제나 가장 큰 명제는 변치 않는다.

나를 낳아준 내 부모, 적어도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 내어주어 나를 키워낸 부모라면

그 부모의 연약한 때에 마땅히 자식의 헌신이 되돌려져야 한다고.

그 보은의 크기야 부모가 준 것에 비하자면 비교할 수 없을만큼 규모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나이 든 부모는 돌봐져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이면서, 또한 나에게도 타당한 가치일텐데

왜 9천원조차도 아깝게 느껴지는 것일까.

 

 

 

 

 

 

이제는 정말로 때가 되었다. 정신 차릴 때가.

적어도 먹는 것, 원하는 것만큼은 채워드릴 수 있도록 노동으로 환산되는 돈의 가치를 키워야한다.

그러기 위해 블로그와 유투브에 운명을 걸어야 한다.

 

몇 번이나 시작했다가 포기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블로그.

거창한 생각 뒤에 초라한 실행력으로 시작조차 못해본 유투브.

 

단기알바 할 생각 하지 말고, 그 시간에 블로그와 유투브에 시간과 노동을 할애해보자.

 

 

9천원 따위, 생각지 않아도 되는 삶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