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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머리를 잘랐다.

엄마가 다니던 미용실이 부쩍 문을 자주 닫는 느낌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문을 닫는 날이 일정치가 않은 것 같다.

때문에 답답함을 잘 참지 못하는 엄마가 큰 맘 먹고 머리를 자르러 나갈 때마다 헛탕을 치는 날이 잦아졌고,

그와 비례하여 엄마의 짜증도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더이상은 못참겠는지 엄마는 내게 머리를 잘라줄 것을 요구했다.

 

*

 

선교사로 해외로 떠나기 위해 이것 저것 준비하던 친구는 미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곳으로 가는 것은 아니었기에

가서 현지 사람들 머리를 손질할 생각과 자녀들의 머리를 직접 자르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비용 절감 차원도 있었을꺼다.

 

이후 해외에 정착한 친구는 가끔 사진으로 자기가 자른 자녀들의 미용 사진을 보내주곤 했고,

그 때마다 나는 웃음과 타박을 함께 보내곤 했다.

특히 너무 짧아진 앞머리에 속상해하던 친구 딸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봤을 때에는 더욱 폭소하며 놀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식이 있으면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도 생각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구나 생각을 했고,

미혼으로 살아가는 나는 그저 먼나라 이야기처럼 잘 와닿지 않는 현실인지라 친구가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더랬다.

 

*

 

살면서 누군가의 머리를 만져본 적이 없다.

물론 머리 말리는 정도는 해봤던 기억이 있다. 어린 조카와 엄마가 아팠던 시절 엄마를 돌보던 때.

그 이외에는 누구 머리를 잘라준다거나, 세팅을 해준다거나 하는 것은 생각을 해 본 적도 없고 시도조차 안해봤다.

관심에도 없는 일이었고, 그런 재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

 

엄마의 요구를 듣고는 적잖이 당황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언젠가는 내게 닥칠 일이었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한 번 도전해보기로 결정했다.

엄마가 더 나이 들어 거동이 어려워진다면 그 때에는 내가 엄마 머리를 잘라드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렴풋하게 생각하곤 했었기에 지금 경험을 한 번 해보자 싶었다.

 

며칠간 유투브를 보았고,

방법을 이미지 트레이닝하며 숙지하였다.

 

그리고는 새로 사놓고 한번도 쓰지 않았던 주방용 가위와,

언젠가 엄마가 사놓았다던 머리숱 치는 미용가위 두개를 들고

엄마의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어설펐지만 성공적이었다.

물론 생각만큼이나 어려웠다.

하지만, 숱도 잘 쳤고, 쥐 파먹은 듯한 곳도 없었고, 제법 뒷머리 라인도 일정했다.

기본적으로 형이 잡혀 있는 짧은 커트였고, 뒷목에 닿는 부분만 정리하고 숱만 치면 되는 일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문제는 엄마는 매우 만족하며 다음부터 내가 머리를 자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한달에 한 번정도 만원씩 쓰는 것이 아깝다고 하시면서

앞으로를 위해 미용가위 몇 개를 사오라고....

 

 

자녀를 경험해보지는 않았지만,

나이 들어가는 부모를 곁에서 돌본다는 것은 마치 어린 자녀를 돌보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잠을 잘 잤는지, 내가 없는 동안 밥은 잘 드셨는지, 약은 잊지 않고 챙겼는지, 화장실은 잘 갔는지...

옷을 살 때에도 같이 다니며 하나 하나 골라드리고,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엄마 입맛에 맞는 걸로 골라 고기는 잘라서, 섞는 음식은 섞어서, 부페는 엄마를 데리고 다니면서..

물을 챙기고, 입을 닦아드리고, 나올 때 옷 정리까지 해드리곤 하는 일련의 모든 것들이 마치 어린 자식을 돌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낯선 경험을 좋아하면서도 두려워하는 나에게

엄마가 나이 들어가는 여정에서 책임져야 하는 새로운, 많은 일들은 꽤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하나 하나 천천히 해결하고, 부딪치며 겪어내다보면 능히 감당할만 하겠지.

 

*

 

엄마의 머리를 잘랐다.

그리고 두려움의 또 한 매듭을 잘라내었다.